지난 ‘설송아의 북한여성경제학’ 첫 번째 글에서는 북한 여성들이 결혼을 어떻게 ‘기획’하게 되었는지 살펴봤습니다. 장마당 이후 경제력을 확보한 여성들은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도 자신의 미래를 현실적으로 계산하기 시작했죠.
이번 두 번째 글은 그 질문을 출산으로 이어갑니다.
북한의 합계출산율은 1990년대 1.91에서 2000년대 1.59, 2010년대 1.38로 낮아졌습니다. 북한 당국은 1998년 제2차 ‘어머니대회’를 열고 다산을 국가적 과제로 내세웠고, 다섯 명 이상 자녀를 둔 여성을 ‘모성영웅’으로 치켜세웠습니다.
하지만 국가가 더 낳으라고 말해도, 여성들의 삶은 그 구호대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설송아 작가는 이 문제를 자신의 경험에서 꺼냅니다. 태어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아이를 업고 장사에 나섰던 시간, 그리고 다시 임신하면 장터를 비워야 한다는 현실. 장사를 멈춘다는 건 어렵게 지켜온 생계의 자리를 잃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에게 출산은 가족의 축복이기 전에, 가족이 내일도 먹고살 수 있을지 계산해야 하는 현실이었습니다.
평양산원(산부인과) 내부 모습 (출처: Roman Harak at Wikimedia Commons)
그래서 어떤 여성들은 피임을 선택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병원 안에서 이뤄지던 시술이 점차 병원 밖으로 옮겨갔고, 산부인과 의사들은 자택의 작은 공간에서 피임과 낙태 시술을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뜻밖에도 이 흐름은 북한 의학대학 지망생들 사이에서 산부인과가 주목받는 현상으로 이어지기도 했죠.
국가는 출산을 말하고, 가부장제는 아들을 기대합니다. 하지만 여성은 이미 태어난 아이, 가족의 생계, 자신의 몸과 시간을 함께 계산해야 합니다.
설송아 작가의 두 번째 글은 이 복잡한 계산이 북한 여성들의 삶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따라갑니다. 국가와 가정이 “더 낳으라”고 말할 때, 여성들은 어떤 방식으로 자기 삶을 지키기 시작했을까요?